1. 전염병과 폭우와 폭염
독일 서부 지역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집을 잃은 시민들이 많다고 합니다. 옛 서독 수도인 본 서쪽의 라인바흐 마을도 인근의 라인 강 지류가 범람하면서 피해가 컸다고 합니다. BBC 방송에 의하면 20㎝ 정도의 개울 수위가 몇 시간 만에 최대 5m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지난 14∼15일 내린 폭우로 독일에서만 사망자가 100명이 넘었고, 이외에도 수백 명이 실종 상태여서,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과 같다고 합니다.
요즘은 기후변동이 심각하여 재앙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캐나다 컬럼비아 주에서는 지난 6월 25일부터 일주일간 40도가 넘는 살인적인 폭염으로 719명이 사망을 했답니다. 미국에서도 폭염으로 바다에 있는 어패류가 한꺼번에 폐사해 버리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이번 주부터 우리나라 서울도 40도가 넘을 것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또 확산되어 있는 코로나 변이바이러스는 역학조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나 인도 그리고 쿠데타 가운데 있는 미얀마 같은 나라는 코로나에 걸리면, 그냥 죽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변이 바이러스가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확산되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지방으로 피신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런 재앙의 시대에 우리 성도님들은 영적으로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지혜로 무탈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불순종으로 고집하면 점점 영적인 침륜에 빠집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람, 가드헤벨(그 우물가의 포도주 틀/다볼산 인근/요나의 출신지) 아밋대의 아들 요나가 신앙생활 가운데 겪었던 간증입니다. “아밋대”라는 말은 ‘진실하다, 충성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아마도 요나의 아버지는 믿음이 좋으신 분 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요나가 살았던 시대는 열왕기하 14장 25절의 내용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13대왕 여로보암 2세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당시 북이스라엘은 외적으로 힘이 있고 물질이 풍성한 때입니다. 적대국가로는 역대로 앗수르가 있었을 뿐, 그 외 주변국은 북이스라엘에 적수가 되지 못할 정도로 부강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부르시더니,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도시에 인구가 12만 여명이 살고 있었는데, 악독이 하나님 앞에까지 차오를 정도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니느웨를 심판하시기 전에 요나 선지자를 먼저 보내셔서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욘 3:4)라고 외치게 했습니다. 그래도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하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이 사명을 받은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못 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3절에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아마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유인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괴롭혀 온 앗수르제국 니느웨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 당장 심판을 받아 멸망해 버렸으면, 마음이 시원하다 못해 언친 체증이 확 풀리고 자업자득이요 인과응보이자 죄의 심판이라고 여길 터인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니느웨를 심판하시기 전에 회개할 기회를 한 번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이방인이었던 로마 백부장 고넬료의 집으로 초청되어 가서 이르기를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라고 증거 하잖아요.
요나는 하나님을 잘 몰랐습니다. 온 우주의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려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것도 니느웨와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려고, 이스라엘 서쪽 욥바라는 항구로 갔는데, 때 마침 다스시로 가는 배가 정박해 있는 거예요. 요나가 가고자 했던 다시스는 지중해 서쪽 스페인에 있었던 유명한 상업도시였습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가 정박해 있는 것을 보자, 그때 요나의 생각은 자기가 옳고, 하나님의 생각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가드헤벨 즉 다볼산 인근 자기 집에서 욥바 항구로 내려 왔을 때, 다시스로 가는 배가 없었더라면 자기 생각이 틀렸고, 하나님의 뜻이 맞았다고 생각했을까요?
여러분도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려고 도망쳤는데, “세상적으로 잘되어 성공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이 틀리고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라고 대답할 수 있나요? 여러분, 세상적으로 잘 되고 성공하는 것이 모두 자기가 옳고, 하나님이 틀린 경우입니까? 아닙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만이 반드시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죄악이 가득한 아합 왕 때도 북이스라엘은 세상적으로 힘이 있었고 물질적으로 풍성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요나가 살고 있었던 여로보암 2세 때에 북이스라엘은 최고의 전성기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북이스라엘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겼나요. 그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종들을 박해하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겼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요나는 순간적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요나는 때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자, 하나님께서 그가 도망가는 것을 동의하신 것으로 받아들인 거예요. 이처럼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결과가 반드시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요나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기 위해, 정박하고 있던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요나는 자기감정에 붙잡힌 생각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치고 있어요.
지금 우리나라 주변에도 적대국가가 있는데요. 일본이나 북한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가 있어요. 이들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민족을 괴롭힌 원수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요나처럼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과연 하나님께서는 무어라고 말씀하실 까요? 또 가정생활이나 학교생활 나아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받거나 피해를 당해 원수지간처럼 되어 버린 경우가 있는데요. 그렇다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지 않아도 될까요?!
여러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6:35에서도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로마서 12:21에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고요. 그래서 저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어서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감정에 따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성에 따라 살아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인이 절대적으로 따라 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그 길이 진리의 길이고, 생명의 길이며, 축복의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감정에 치우치거나 자기감정과 생각에 따라 살기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되면, 그 사람은 그 순간부터 상승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강하는 인생이 됩니다. 그 근거를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나는 다스시로 도망치기 위해 지형이 높은 가드헤벨 자기 집에서 욥바로 내려간 것으로 3절 중반 절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형이 높은 곳에서 내려가는 것을 영어로 go down이라고 하는데요. 성경원형으로는 “야라드”라고 합니다. 이 ‘야라드’ 라는 단어가 요나서에 네 번 사용이 되는데요. 오늘 본문에서 만 “내려가다”의 ‘야라드’가 무려 세 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번 같이 찾아보겠습니다. 3절에서 두 번이나 사용됩니다. “욥바로 내려갔더니” 그리고 끝 소절에 “배 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여기에 약간 번역에 문제가 있는데요. 올바른 번역은 ‘배 삯을 주고 배로 내려가 탔더라.’가 맞습니다. 또 5절 하반 절에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2:6에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지 않아도 요나의 계획과 생각대로 처음에는 다시스로 가는 배도 적시타로 욥바에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아도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승승장구하며 상승하는 인생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서 선장이 아닌 다른 인생의 배, 즉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는 정반대의 방향인 서쪽 지중해 욥바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지인 동쪽 니느웨로 가라고 했는데, 요나는 바다로 내려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바다의 배에서도 요나는 배 가장 아래 밑층으로 내려갔습니다.
나중에는 요나가 배에서 더 내려가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로 던짐을 당하게 됩니다. 요나의 내려가는 인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물에 빠진 요나를 큰 물고기가 삼켜서 물고기 창자 속까지 내려갔습니다. 그 물고기 뱃속은 마치 지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비극과 죽음의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3. 너는 일어나 외치라(2절) = 너는 일어나서 구하라(6절).
거기다가 내려가는 인생은 부끄러움과 수치와 버림을 당합니다. 우리 2절과 6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고집을 부렸더니, 나중에는 다시스로 가는 배에 이방인 선장이 하나님께서 하셨던 말씀과 똑 같은 말을 합니다. 2절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너는 일어나 ··· 외치라.”입니다. 이 말씀을 배 밑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요나를 보고 이방인 선장이 똑같이 대언을 하는 겁니다. 6절에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 구하라 즉 외치라.”입니다.
이와 같이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다가 그 인생이 추락하여 계속 내려가다가 지옥과 같은 물고기 뱃속까지 내려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방인 선장에게 무시와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이방인들을 통하여 바다로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잠깐 적용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에 기상재앙과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코로나 전염병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혹시,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쉽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무정하고 무감각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측하건대 지금 세계적으로 코로나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인구가 하루에 작은 도시 하나가 사라지고 있는 정도입니다. 어떤 나라는 사망자의 수를 집계할 수가 없고, 몇 만 명에서부터 몇 천 명에 이르는 나라들이 수 두록 하니까요.
왜, 날이 갈수록 기상변동이 점점 확산되어 예방할 수 없는 재앙의 단계에 이르고 있을까요? 폭우, 폭염, 폭풍, 폭설이 매년마다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인간들을 위기와 멸망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을까요? 이런 재앙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데 대한,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엄한 경고이자 진노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적당히 세상의 죄와 타협하는 기독교인들을 향한 이변과 기적을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염병이 창궐하고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예배를 소홀히 여깁니다. 아예 기도를 하지 않는 성도가 많습니다. 성경을 보지 않는 성도가 많습니다. 이것은 명칭만 기독교인이지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마치 거센 풍랑 가운데에서도 요나가 배 밑창에서 깊은 잠을 빠졌듯이 말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세상의 희망입니다. 죄악으로 어두워진 세상을 밝히는 등대와 같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구원하는 마지막 보류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자기감정과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은, 요나가 니느웨가 아니라 다시로 가는 것과 같은 불순한 행위입니다.
지금 세상 처처에 전염병과 기상 재앙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며 자기감정과 고집대로 살겠다고 영적인 잠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상을 섬기는 세상 사람들은 전염병과 기상재앙을 걱정하며, 그들의 우상에게 기도를 하는데, 정작 하나님을 믿는다는 성도가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요. 기도를 하지 않아요.
그런 요나를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선장을 통하여 깨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게 하셨습니다. “자는 자여 일어나서 구하라!” 아마, 그때 요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그리고 독백으로 말하기를 “하나님께 다시스로 가는 배 밑창까지 나를 찾아오시다니···,” 그때서야 요나는 더 이상 하나님의 손에서 빠져 나갈 수 없음을 깨닫고, 이방인 선장에게 이실직고를 하게 되지요.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욘 1:12).
그러니까 요나 때문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깨질 지경에 이르고, 배안에 모든 물건을 버려야하는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요셉은 그 때문에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게 되잖아요. 하나님의 사람 에스더와 모르드개은 그들 때문에 유다민족이 페르시아 제국에서 구원을 받잖아요.
그런데 다시스로 가는 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요나 때문에 침몰의 위기에 빠진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복에 근원이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으로 고집하면, 그 인생이 점차적으로 추락하고 남들에게 불행의 통로가 되고, 불행의 근원이 됩니다.
4. 이제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니느웨로 올라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감정과 고집대로 살겠다고 다시스로 내려가고 있습니까? 내려가지 마십시오. 자신도 망하고 함께 한 사람들도 망하며 죄악 된 세상도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라도 내려가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만약, 멈추지 않으면 요나가 고기 배속까지 내려갔던 것처럼, 죽음의 위기와 불행의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재앙의 바다에 던짐을 당하지 않으려면 내려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은 깨어서 기도하는데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있지 마세요. 더구나 코로나 전염병, 폭우, 폭풍, 폭염, 폭설 등 재앙의 때에 믿음 없이 내려가지 말고, 믿음으로 올라오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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